가을철의 별미 전어를 두고 흔히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거나, ‘집 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으면 되돌아온다’는 등의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가을철 전어는 별미 중의 별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전어 중에 붉은 색을 띠고 있고 그 맛이 일품인 전어를 흔히 ‘떡전어’라 부르는데 그 산지가 진해지역의 속천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떡전어를 두고서 흔히 사람들은 모양이 떡처럼 퍼져있고 맛이 떡같이 고소하다 하여 ‘떡전어’라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이 생원이라는 사람이 양반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고기 잡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어민들과 몸을 부대끼며 내이포(乃而浦, 현재의 진해)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이 생원이 가을전어 잡이를 나서는 배에 처음으로 올랐는데 유난히 더웠던지 해수온도가 올라 그물에 끌려오는 전어들이 많지가 않았다.
어민들은 그래도 한 마리의 고기라도 더 잡을 욕심에 수없이 그물을 던지고 걷어올리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이 생원이 배에 접근해서는 가위로 그물을 잘라버렸다. 시원찮은 전어 잡이에 화가 나 있던 어민들은 생원에게 그 연유를 따져 물었다. 그러자 이 생원은 “올해 전어 잡이가 신통치 않다고 해서 분별없이 그물을 끌어올려 새끼 전어들을 시장에 내다 판다면 올 겨울 그럭저럭 식솔들의 배를 채울 수는 있으나 내년부터는 씨가 말라 뭘 먹고 살 수 있겠나?” 이 생원의 말에 어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새끼전어들을 다시 물 속으로 돌려보내 주었고 이후로는 전어들의 산란기인 5월에서 7월까지는 전어 잡이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생원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이 더 깊어졌다.
그러나 이런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들도 생겼는데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한 수령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어느 해 관찰사가 이 마을에 도착하자 수령은 그를 대접하기 위해 전어를 잡아오라고 백성들에게 명하였다. 그런데 마침 이때는 이 생원과 약속한 금어기라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래서 이 생원의 허락 없이는 전어를 잡아 올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수령은 노발대발하였다. 이 사실을 관찰사에게 알리면서 이 생원이 사람들을 수시로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역모를 꾀한다는 모함까지 덧붙였다.
관찰사는 즉시 이 생원을 포구로 잡아오게 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는 “이 생원! 내 이 마을의 전어가 하도 맛이 있다하기에 수령에게 부탁하여 그 맛을 보고 싶다고 했다. 어찌 마을 어민들이 지아비같이 여겨야 할 수령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자네가 마을 사람들을 집에 수시로 불러들여 음모를 꾸민다는 데 사실인가?”
이에 이 생원은 “내 집 찾아 온 이웃들이 털어 놓은 어려움에 몇 마디 말로써 도움을 주고자 했던 일이 이 나라 법에 어긋난 것이라면 나를 벌하여 주시오! 그리고 관찰사에게 전어를 대접하는 일이 가을 전어 풍년을 위해 산란기에는 전어를 잡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면 나를 죽여주시오!”
이 말을 들은 관찰사는 망나니를 불러 그의 목을 치고자 하였다. 망나니의 칼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이 생원을 목놓아 불렀다. 그런데 망나니의 칼날이 이 생원을 향하는 그 때 바닷속에서 무엇인가 튀어 올라 백사장에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다름 아닌 전어들이었다. 전어들은 뭍에 올라오자마자 몸에 빨간 핏기를 띠며 죽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전어들이 모래 위에 놓여진 모습이 마치 덕(德)이라는 글자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관찰사는 이 생원을 풀어주었다. 그후 이 생원을 죽음으로부터 구한 내이포의 전어를 사람들은 ‘덕전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덕전어’가 된소리로 발음되면서 ‘떡전어’가 된 것이다.
이종훈(진해중 교사)
★이 내용은 진해시가 주최한 ‘진해스토리(창작)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역사적 사실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