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생활/좋은 음식

황기백숙, 그 보기(補氣)의 맛

공주~ 2011. 8. 13. 10:33

이것은 읽은 이야기가 아니다. 들은 이야기다. 양생가들은 먹거리에서도 고기 보다는 생선을, 생선에서도 비늘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을 챙기고, 고기에서는 네발 달린 짐승의 것보다도 두발짐승의 것을 취한다고 한다.
하긴 중국 식도락가로 유명한 18세기 원매(袁枚)의 《수원식단》(隨園食單)을 보면 물고기도 해선단(海鮮單)·강선단(江鮮單)으로 나누고, 다시 유린단(有鱗單)·무린단(無麟單)을 들어 말하였다. 육류도 특생단(特牲單)·잡생단(雜牲單)에선 네발짐승을, 우족단(羽族單)에선 두발짐승의 조리법을 들어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두발 가진 닭 음식의 하나, 황기백숙(黃   白熟)을 이야기하려는데 앞 사설이 길어졌다. 나의 어린시절, 닭의 조리라면 으레 닭국이었고, 여름철의 보신을 위한 것이래도 마늘계 한 마리면 족한 것으로 알았다.
어린 때 먹은 닭국이래야 미역국에 닭고기 몇 점 넣은 것이었다. 이용기(李用基)의 《식신요리제법》(1924)에 의하면 그렇게 쉽게 조리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털을 없이한 닭을 굵게 잘라 장 치고 파를 썰어 넣고 후추가루를 치고 주물러 솥에 넣고 물을 조금 치고 볶다가 다시 물을 많이 붓고 무나박을 썰어 넣는다. 다 끓은 후에 고추가루를 쳐서 먹는다’고 했다. 이렇듯 끓여낸 닭국을 먹어본 바는 없다.
마늘계는 어려서도 먹은 일이 있다. 내장을 뺀 닭의 뱃속에 찹쌀과 마늘쪽을 적당히 넣고 꿰맨 후, 끓는 물에 넣어 고아낸 것이었다. 마늘쪽의 포근거린 맛과 향이 어린 입에도 싫지 않았다.
요즘에야 시골엘 간대도 마늘계는 대하기 어렵다. 주로 식당음식이긴 하나 흔한 게 삼계탕이다. 인삼 뿐 아니라 녹각·대추·은행·잣·녹두 등을 넣어 삼계탕이라 하여 내어놓는 식당이 많다. 솜씨 각각 맛 각각이라 할 수 있으나, 더러는 맛보다도 양으로 하여 뚝배기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할 때면 재료가 아깝다. 최근엔 1인분 1만8천원의 전복삼계탕도 있다. 한 끼니 식사로서는 양도 과할 뿐 아니라 값도 과하다는 생각이다.  
얼마전 네 사람의 일행이 황기백숙 한 마리로 맛 좋고 배부른 점심을 즐긴 바 있다. 「심심산골 대승가든」(완주군 소양면 대승리, 전화 243-1516)에서였다. 마늘계백숙·삼계백숙·옻닭백숙을 즐겨본 바 있으나 황기를 넣어 조리했다는 황기백숙은 처음이었다.
한방에서는 황기의 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몸이 허약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황기뿌리를 달여서 차처럼 마시면 효험을 본다는 것이다. 약성은 온화하고 맛이 달다고 했다. 여름 한 철 차로 달여 마셔도 좋을 것 같다.
나의 친구 김영택 약사에게 황기를 묻자, 선뜻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에 빠질 수 없는 약재로, 체력을 항진시켜 주고 전신근육의 긴장도를 높여 주는 효능이 있다’는 대답이었다.
「심심산골 대승가든」을 입에 올리자면 자못 시적인 율조가 돋는다. 상위에 오른 백숙도 이곳 산자락에 놓아기른 닭이라고 한다. 묵은김치·솔무침·참나물무침·꽈리고추조림·호박나물볶음·고구마순탕의 재료들도 모두 자영농장에서 난 것이라고 했다. 네 사람이 황기백숙 한 마리에 따라나온 닭죽 그리고 이 집 특제의 탕차(湯茶)까지 대접받고, 값을 치루자니 3만5천원이다. 푸른 산에 들어 맛 좋고 배부르고 새기운도 얻은 듯한 느낌이었으니, 점심 복은 더 바랄 게 없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