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에 관하여/변액·유니버셜보험

소문 난 ‘보험왕’, 달아나니 ‘사기왕’

공주~ 2011. 3. 8. 06:53


지난 2월23일 서울 여의도의 알리안츠생명 본사에 상인 50여 명이 몰려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고객을 상대로 수십 억원대 사기 행각을 벌인 간 큰 '보험왕'이 결국 덜미를 잡혔다. 지난 2월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알리안츠생명 본사 건물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 회사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해 온 이 아무개씨(49·여)가 고객들로부터 70억원 가까운 투자금을 가로챈 뒤 잠적해, 피해자들이 보상 책임을 묻기 위해 본사 건물에 모였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고수익 상품에 가입하라고 권유해 약 70억원대의 돈을 받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2월23일 알리안츠생명 본사 건물에서 만난 피해자 대표 최 아무개씨는 "이씨에게 사기당한 피해자가 지금까지 70여 명에 이르고 피해 규모도 100억원 가까이 불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수년 동안 연속으로 알리안츠생명에서 보험왕에 올랐던 간판 스타였다. 1998년에 알리안츠생명에 입사한 이후 2004년부터 다섯 차례나 '보험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씨는 알리안츠생명 을지지점에 근무하면서 인근의 동대문과 남대문 및 중구 상가 일대를 자신의 주요 영업 무대로 삼았다.

'돌려막기' 수법으로 보험왕 자리 유지

알리안츠생명 관계자는 "이씨는 회사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가 보험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밤 상가와 새벽 시장을 개척하며 쉬지 않고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다른 보험설계사들이 계약을 체결해 회사에 납입하는 금액은 매월 평균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월평균 납입액이 2천만원대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이씨에게 피해를 입은 한 동대문 상인은 "내가 듣기로 이씨가 주로 관리하는 고객이 4백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앞으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 대부분이 이씨와 5~6년 이상 안면을 트고 지낸 사이로 남대문이나 동대문, 명동 일대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10억원가량의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2월 초부터 이씨에게서 계약 해지 원금이나 수익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하나 둘 본사에 민원을 넣으며 이씨의 '사기'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피해자 대표 최씨는 "이씨는 '돌려막기' 수법을 통해 보험왕 자리를 유지했다. 자신과 보험 계약을 맺으면 2~3년 내에 아무 때나 원금을 보장한 해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이를 위해 이씨는 실제로 한 고객의 계약금으로 다른 고객의 이익금 내지는 원금을 채워주는 '돌려막기'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씨는 알리안츠생명에 한 달에 9.7%가량의 수익이 나는 고수익 상품이 있다며 가입을 권유했다. 또 자기 역시 이 상품에 20억원가량을 투자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씨와 총 여섯 건을 계약했는데 알리안츠생명을 신뢰했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문서로 계약을 하고 상품에 가입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사기 행각이 들통 난 것에 대해 최씨는 "고수익 상품이 있다고 해서 가입한 사람의 수는 늘어났고, '돌려막기'로 이들에게 모든 수익금을 나눠주는 데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이씨가 1월에만 60억원 가까운 돈을 끌어모은 것은 결국 이런 사태가 터질 것을 예상하고 잠적하기 위한 준비였을 것이다.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데도 회사 쪽에서는 '보험설계사는 회사의 정직원이 아니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회사에도 보험료 납부 안 해 고발당한 상태

보험사측은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의혹과 관련해 이씨에 대한 감사에 나섰고, 경찰서에 횡령 혐의로 그를 고소했다. 알리안츠생명측은 "2월에 고객들의 민원이 접수되고 난 뒤 15일부터 이씨에 대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2월21일 1차 감사를 마쳤는데 그 결과 이씨가 고객들로부터 받은 보험료 5천3백만원을 회사에 납부하지 않고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회사에서는 이씨를 횡령 혐의로 고양경찰서에 고소했다"라고 밝혔다.

알리안츠생명 관계자는 "감사 과정에서 이씨는 고객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자신이 알고 있는 펀드매니저에게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그 펀드매니저가 잠적하는 바람에 고객들에게 수익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펀드매니저는 부동산과 주식 관련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개인 투자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씨의 진술 내용이 매번 바뀌고 있어 그 펀드매니저가 실존하는 인물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어떤 경로이든 이씨가 개인 투자 명목으로 고객들의 돈을 횡령한 것이라면 이 부분은 회사가 보상해줄 수 없다고 한다. "회사를 등에 업고 서류를 위조해 거래를 체결한 경우는 어떤 식으로 보상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회사 관계자는 "알리안츠는 계약이 체결되면 고객에게 자필 서명을 했는지 투자용 상품에 대한 약관은 확인했는지 등을 묻는 '웰컴 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사실 '보험왕' 사기 사건은 대다수 보험사가 해마다 겪고 있는 고질적인 병이다. '보험왕'이라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허위 계약을 만들어내거나, 자신이 쌓아온 유명세를 활용해 고객의 돈을 횡령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왕' 사건이 터지면 보험사 쪽의 타격도 상당하다.

알리안츠생명 관계자는 "돈 거래 상품을 다루는 회사는 신뢰가 최우선인데 우선 회사 이미지가 심각하게 타격을 입는다. 이번 사건으로 이미 6천명의 보험설계사들이 영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 문제가 터지고 나면 보험왕이 그동안 계약을 체결하고 받아온 '커미션'도 회사로서는 엄청난 손해이다. 그래서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주1회 완전 판매 및 윤리 준법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금전 거래에 대한 부분까지 관리하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보험왕 이씨의 말을 듣기 위해 그의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2월25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