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화
레오나르도가 남긴 회화작품의 수는 실제로 많지 않다. 현존하는 그림 가운데 17점만이 그의 작품으로 확인되었으며 그것들 중 몇 점은 미완성이다. 그의 주요작품 〈앙기아리 전투〉와 〈레다〉는 둘 다 미완성인 채 모작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얼마 안 되는 작품만으로도 레오나르도는 유례없는 명성을 얻었는데, 바사리는 자신이 쓴 〈미술가 열전 Lives〉에서 미술사를 3시기로 나누면서 레오나르도를 마지막 '예술의 황금시대'에서 기술했다.
레오나르도가 추구했던 것은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1474경~75)에 그린 부분인 천사와 풍경의 일부분에 이미 나타나 있다. 여러 방향으로의 움직임에 기초해 자연스럽게 구조화한 천사의 몸과 이완된 자세 및 일어나는 일에 눈길을 주나 동시에 안으로 쏠리는 시선에서 그러하며, 풍경 부분에서는 '체험한 자연'에 대한 새로운 표현을 보여주었다. 1473년 21세의 젊은 나이에 그린 습작풍경화(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는 그 투명한 대기의 처리에서 인지된 현상을 설득력 있는 회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브누아의 성모〉(1478)에서는 성모가 들고 있는 꽃에 사랑스럽게 손을 뻗치는 아기예수를 통해 전통적인 회화 형식에 새롭고 표현이 풍부하며 아주 매력적인 분위기를 부여했다.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1475경~78)은 가까운 것과 먼 것을 독특하게 연결해 그리는 초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성 히에로니무스〉(1480경)에서 성인의 야윈 몸은 그의 진지하고 객관적인 해부학 연구를 기반으로 한 사실적인 진리로 표현되었다.
많은 인물들이 포함된 그의 첫번째 대작 〈동방박사들의 경배〉(1481)는 완성되지는 못했으나 대가의 섬세한 작업방식을 꿰뚫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 그림에서 성모와 아기예수의 주된 처리와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차적인 처리는 거장다운 구성감으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은 갖가지 심오한 놀라움을 나타낸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첫번째 〈암굴의 성모〉는 레오나르도 회화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그림은 산프란체스코 교회 예배당을 위한 대작의 중앙 패널로 1483~85년경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림이 처음에 계획했던 장소에 놓이지 않게 되자 레오나르도는 제자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와 함께 같은 주제로 2번째 그림을 그렸다. 〈암굴의 성모〉는 어린 예수가 이집트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같은 또래의 요한과 광야에서 만난다는 경외서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 그림의 신비스런 특성은 몽상적인 성격에서 나온다. 그는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기법을 총동원했다. 그의 유명한 스푸마토에 의한 부드러운 색조, 어두컴컴한 동굴로부터 빛을 가득 받고 드러나는 인물들, 그들의 조용한 자태, 하느님의 아들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인 요한을 가리키는 천사의 의미있는 몸짓 등 모든 것이 형식적으로 잘 조합되어 최고의 표현 효과에 이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의 하나인 〈최후의 만찬〉은 대단히 단순하면서도 대가다운 구성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레오나르도는 배신자 유다를 묘사하는 통상적인 전통적 표현을 따르지 않고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라는 신약의 구절과 관련된 고도로 긴장된 순간을 묘사했다. 이 그림은 주제의 심오한 개념에서 완벽하면서도 간단한 인물배치에서, 몸짓을 통해 강조된 사도들의 기질에서, 극적이면서 동시에 장엄한 화면처리에서, 같은 주제의 그림들의 모범이 되는 표현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수많은 후대 화가들과 문인들의 경탄을 자아낸 이 그림은 수많은 복제화와 인쇄물을 통해 널리 유포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복제판은 1800년에 라파엘로 모르겐이 출판한 것들이다. 레오나르도는 이 벽화를 위해 쉬지 않고 재빨리 그려야 하는 프레스코 기법 대신 돌 벽 위에 자신이 만든 바탕에다 템페라 화법을 썼다. 이 제작기법은 바탕이 곧 벽에서 떨어져나가기 시작해 실패로 드러났다. 그러한 손상은 16세기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16세기 중엽에 이미 이 그림은 유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훗날 부적절한 복구작업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현대적인 복구작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부식되었다.
1500~06년에 걸친 피렌체 시절에 레오나르도는 그의 명성을 더 높여준 대작에 착수했다. 〈성모자와 성 안나〉(루브르 박물관 소장)·〈모나 리자〉·〈앙기아리 전투〉·〈레다〉가 그것이다. 완성되기도 전에 피렌체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성모자와 성 안나〉는 인물들간의 유연성과 구성에서 역동감과 긴장감을 자아내는 계산된 효과로 인해 고전주의자들과 마니에리스모 화가들에게 모두 모범이 되었다. 〈모나 리자〉는 초상화의 이상형이 되었는데, 젊은 라파엘로가 작업중인 작품을 스케치하여 〈마달레나 도니의 초상 Portrait of Maddalena Doni〉을 위한 모델로 삼았다. 〈레다〉 역시 당시 많이 그려진 굴곡이 많은 인물상의 모델이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라파엘로와 같은 고전주의 화가들뿐 아니라 자코포 폰토르모와 같은 마니에리스모 화가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앙기아리 전투〉(1503~06)는 레오나르도 미술의 최고봉에 이르렀다. 현재 대부분 보존되고 있는 습작 소묘들은 '회화학'에 나타난 그의 고상한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1507년 이후 밀라노·로마·프랑스에서 지내면서 그는 거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밀라노에 있을 때는 〈레다〉의 주제를 다시 다루기 시작해 습작으로 〈무릎 꿇은 레다 Kneeling Leda〉를 그렸다. 그의 말년 양식을 보여주는 소묘들은 괴상하고 불가사의한 감성을 갖고 있다. 로마에서 그리기 시작하여 프랑스에서 완성한 듯한 〈세례 요한〉에서는 예수의 길을 예비했던 요한을 신비한 신탁의 전달자로 묘사하면서 평범한 회화 전통의 한계를 초월했다.
레오나르도의 예술표현의 마지막 발로는 〈세상의 종말〉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세상의 종말을 주제로 한 일련의 스케치들이다. 여기서 레오나르도의 상상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우주 속의 영적인 힘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 않으며 움직이는 물체 속에 나타난다. 소용돌이치는 물과 공기, 암석의 형태, 식물의 성장 등 그가 관찰했던 것이 이제 구름이 되고 푹풍우가 되어 거대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세상의 틀이 산산조각나더라도 그 파괴조차도 자연의 모든 피조물의 생사를 주관하는 자체적인 질서·조화·균형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이는 '보는 법을 안다'는 그의 인지에 기초한 예술이 결실을 맺은 것처럼 보인다.
■ 조각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회화론〉도입부에서 회화를 조각보다 우위에 두었으나 이 둘을 똑같이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오나르도가 전심전력으로 몰두한 2개의 거대한 조각계획은 불행하게도 성취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조각계획을 위해 그가 남긴 글과 소묘는 청동 주조기법에 대한 그의 폭넓은 경험을 알려주는 동시에 거의 비현실적인 조각계획의 본질을 밝혀준다. 그는 단 한번에 말을 주조해내길 원했으나 말의 거대한 크기는 기법상 불가능한 여러 문제들을 야기시켰다. 이 두 조각을 위한 소묘 계획안들을 보면 레오나르도의 거대한 조각 개념을 알 수 있다. 소묘를 하기에 앞서 살아 있는 말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소묘들은 레오나르도의 예술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예가 되며, 개념에 있어서는 16세기 기마상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 건축
레오나르도는 평생 건축일에 관여했으나 건축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고문의 역할에 그쳤다. 밀라노 대성당에 둥근 지붕을 세우기 위한 공모(1487~90)에서만 오직 한번 그는 실제로 건축일에 참여하려 했으나 그가 제출한 모형이 거절당하자 그 생각을 포기했다. 그밖에도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그의 욕구는 일반적 건물들의 스케치를 낳게 되는데, 어느 밀라노 귀족의 저택(1490경)을 비롯해 밀라노 주재 프랑스 총독 관사(1507~08), 피렌체의 메디치가 저택(1515), 프랑스 로모랑탱의 저택과 정원에 대한 설계도(1517~19)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연구를 진정 특징짓는 것은 건축에 대한 그의 폭넓은 이해에 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연구를 전파하고자 하는 충동을 보이며 건축에 관한 글들을 모아 건축론으로 집대성하길 원했다. 현재 프랑스 학술원에 MS. B로 분류·소장되어 있는 그의 〈건축론〉은 건축의 형태와 양식뿐 아니라 건축 전반에 걸쳐 다룬 것으로, 도시계획도와 같은 항목들과 종교적인 건축과 범속한 건축 및 둥근 천장, 계단, 창문 등의 중요한 세부 요소들에 대한 개요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건축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연구는 그 개념의 풍부함에서 그 시대 건축의 성과에 대한 폭넓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 과학적 연구
- 회화학
레오나르도의 왕성한 과학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평생 자신을 예술가로서 자랑스럽게 여긴 한 인간의 이지적인 산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회화론을 쓰는 데 몰두하면서 처음으로 과학을 접하게 되었다. 오늘날 읽혀지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유명한 회화 연구서는 그의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가 그의 여러 원고에서 선별·수집하여 엮은 것이다. 멜치판(版) 논문집은 1651년 파리에서 라파엘로 뒤 프레스에 의해 호화 장정본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그러나 1817년에야 멜치판의 완성본이 처음 출간되었고, 2가지 표준 현대판으로는 1882년 에밀 루트비히가 3권으로 출간한 독일어 번역본과 1956년 프린스턴의 A. 필립 맥마흔이 2권으로 출간한 것이 있다.
레오나르도는 주제를 훨씬 폭넓게 다루려 했다. 논문에는 회화와 소묘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설명 외에도 그가 깨닫고 체험한 모든 것이 다루어져 있다. 그것은 3가지 중요한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데, 회화를 하나의 학문으로 정의하는 것, 기하학·원근법·광학 등 회화의 수학적 기초이론 및 명암·색채·대기원근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보는 법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화가를 가르치고 이해시키기 위한 것으로 유기적·무기적 자연 형태들과 작용들에 관한 이론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회화론〉에 삽입된 소묘는 첫번째 밀라노 시절에 그린 것부터 말년에 프랑스에서 그린 것들까지 포함되며 주제가 점점 폭넓게 심화되어 있다. 본문의 옆에 많은 소묘들이 그려져 있는데, 유명한 비내리는 풍경(윈저 성 소장)이나 〈잎 Foliage〉(윈저 성 왕실도서관 소장)과 같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수많은 자연 탐구는 곧 〈회화론〉의 삽화이기도 하다. 〈회화론〉에는 그밖에도 명암대조표라든가 그의 유명한 기괴한 두상들이 실려 있는데, 이 두상들은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에 등급을 매긴 여러 가지 인물 유형이다. 신체와 그 비례 및 기관, 기능뿐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운동에 의한 자세 등 인간에 대한 묘사는 상세하게 다루어져 있다.
레오나르도의 해부학 연구는 처음에는 예술가로서의 훈련을 위해 시도되었다가 곧 독립적인 연구 영역으로 발전했다. 그는 '인간의 기계적 면모'(figura istrumentale dell'omo)에 매료되어 인간을 자연의 피조물로 연구하고 제시하려 했다. 초기에는 주로 해골과 근육을 연구했는데, 이때부터 이미 해부학과 생리학 연구를 함께 했다. 그는 결국 내장 및 뇌의 연구에 몰두하면서 감각과 생명의 '원동기'로 뇌와 심장 및 폐를 심층 분석했다. 그는 자신의 입회하에 일생 동안 30구의 인체를 해부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혔고, 이 경험은 르네상스의 가장 뜻깊은 과학적 업적에 속하는 유명한 해부도를 낳았다. 인체에 대한 위대한 도표는 레오나르도가 '소우주론'(Comsmografia del minor mondo)으로 계획했던 것으로, 현대 과학의 도해를 위한 기초를 마련해주었다.
- 기계학과 우주론
레오나르도는 기계학도 역시 예술적 실습으로 시작했는데, 그것에 아주 능통해져 건축가이자 토목기사가 되었다. 그는 당대의 기계학 법칙에 아주 정통해 있었고, 그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모로 힘썼다(→ 고전역학). 그가 쓴 기계학 입문서는 밀라노에서 1490년대말에 나왔는데, 마드리드 사본에서 발견되었다(→ 마드리드 사본 8397). 이 책의 의의는 구체적인 기계나 작업도구의 묘사에 있다기보다는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기계원리와 작동을 설명해주는 실증적인 예를 제시하는 데 있었다(→ 제도). 이 책에서도 도해가 본문보다 선행하는데, 해부도에서처럼 여기에서도 물체를 정확히 실증해주는 명확한 도해 원칙을 발전시켰다.
순수기계학에 대한 흥미는 점차 응용기계학에 대한 관심과 합쳐져 그는 기계학의 기본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의 힘이 유기적·무기적 세계 모두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결국 '에너지'는 레오나르도에게 중요한 개념이 된다. 그는 그 힘이 '영적인 속성'(virtù spirituale)으로 우주를 형성하고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연현상을 입증하는 곳마다 우주를 형성하고 작동시키는 원초적인 역학적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이렇듯 각기 분리된 개별적인 그의 지식 영역들은 그의 과학이 제공해주는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관, '보는 법을 아는 것'에 입각한 우주창조론으로 통합된다.
■ 예술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는 예술가를 시각적 관찰에서 얻은 진실하고 정확한 체험의 자료들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여겼으며, 그 고귀한 소명을 깨닫고 자연의 방대한 영역에서 그 비밀을 캐냈다. 이렇게 얻은 지식을 사전적인 형태로 전달한 그의 유토피아 사상은 여전히 중세의 스토아 학파에 속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연구 결과는 최초의 위대한 새 시대의 사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그것이 아주 참신한 방법의 경험 원칙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끝까지 시각적 관찰에 의한 경험주의자로 남았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천재성에 힘입어 예술과 과학을 종합시킨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L.H. Heydenreich 글 | 金錦美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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