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이야기로 들어왔던 "도를 아십니까"와는 달랐다.
우연히 내가 경험했던 최초의 "도를 아십니까"와도 달랐다.
(최초에 만났던 그 분은 내게 첫 마디를 "눈빛이 슬퍼보이네요"로 시작했었다. 상당히 감상적인 시작이지 않은가..
조상신.. 어쩌구 하기에 바로 저 약속있어서요, 하고 오는 버스 타고 그를 떠나오긴 했지만)
처음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쪽지가 왔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한 번씩 온라인 상에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류의 쪽지를 받곤 해서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모두 도를 아십니까류, 였던 건가 -_-)
게다가 외로운 시절이기도 해서..
반가워요 ^^, 하고 시작되었던 그 인연이 어느 새 오프라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첫 만남 전에 만나면 재밌는 얘기 해줄게요, 라던 이야기도 사뭇 궁금했었고..
상대방도 여자니까.. 최악의 무서운 일은 없겠지.. 생각했던 것이 화근을 불러왔달까.
막상 대면한 이후 무언가 어색한 감을 느끼면서도 처음이라 그런 가보다 스스로를 달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삼겹살과 해후하여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방의 숨겨진 의도를 알아차리기에 나는 아직도 어리숙했던 것이다.
아아, 헛먹은 내 스물일곱의 생이여.
고기를 뒤집으며 물었지.
재밌는 얘기 해주신다던 게 뭐예요?
아, 그거요. 좀 있다 조용한 데서 얘기해줄게요. 제가 이름풀이를 좀 배운 게 있어서요.
아~ 저 그런 거 좋아하는데~~
(이미 말려들기 시작한 나)
고기를 다 먹을 무렵 누군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어, 너 왔네? 아는 동생이예요. 근처 온다고 했더니...
아 그러세요? 여기 앉으세요.
(여전히 아무 생각없이.. 이렇게 만나기도 하는구나,라고만... 생각한 나)
찻집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정말 이름풀이부터였다.
깨끗한 a4용지를 잔뜩 꺼내놓는 폼이 살짝 이상했지만.. 펜이 없네요.. 하기에
내 펜을 주고 잔뜩 기대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딱 봐도 얼굴에는 金인데 막상 이름에는 金이 별로 없네요.
아, 제가 사주에 金이 많고 이름에도 金이 많아서 개명하면서 바꿔주신 거래요.
그때부터 시작된 이야기.
완벽을 추구한다/깐깐하다/고집이 세다/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폐와 신장이 안 좋다/신장이 안 좋아서 귀도 안 좋다/
호기심이 많다/예민하다/귀신을 느끼거나 본다/우울하다/게으르다/분위기에 적응을 잘 한다/돈이 많이 모이진 않는다..
오오~ 저 정말 그래요~~ 맞장구쳐가며.. 재밌었다..
그런데 그 후.
그거 아세요,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 사람에게는 2,000명의 조상신이 있어 그 사람을 보호하는데
조상신때문에 대가 끊긴 영혼들은(과거는 전쟁이 많았다는 얘기를 하면서) 조상님 뵐 명목이 없다,는 이유로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척신이 되어 그 사람을 안 좋은 길로 이끈다고.
(음.. 그럴 수도 있겠지..)
조상 중에 장군이 있지 않아요?
저.. 시조가 왕건이 고려 세울 때 옆에 있었다던 배현경 장군이래요.
거봐요.. 그래서 金이 그렇게 많은 걸 수도 있어요.. 장군이 칼을 쓰잖아요. 죽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래서 척신이 더 많은 거예요. 예전에 tv에서 이순신 장군의 후예를 찾았는데 잘 못 살고 있더라구요.
장애도 많고 이상하게 죽은 사람도 많고.. 이순신 장군이 우리나라에선 영웅이지만 일본 사람들을 얼마나 죽였겠어요..
(음 그런가 -_-a)
그 이후..
지금이 대우주의 가을인 거.. 아세요?
대우주에는 사계절이 있고 각 계절마다 법이 있어요.
매년 기제사 드리는 건 대우주의 여름의 법인데.. 이제 대우주의 가을이니까 가을의 법을 따라야 해요.
가을은 원래 더 풍성하고 좋은 계절이잖아요. 그래서 가을의 제사는 기제사처럼 매년 드릴 필요 없이 한 번이면 되요.
이 제사(!)를 한 번 드리면요...
육각수 좋은 거 아시죠? 그 물을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이 제사를 드리면 그냥 물이 나중에 육각수로 변한대요.
카이스트의 모 박사가 그걸 알고는 그해 종합운동장에 카이스트 박사들끼리 다 모여서 제사를 지냈대요.
이게 86년인가 88년도 동아일보에 났는데 모르세요? 어.. 많이들 아는데...
(그땐 대답하지 못했지만.. 나 그때.. 어렸거든요 ;;;)
어쨌든 그래서..
이 제사를 드리려면 세 가지가 중요해요. 첫째, 때.. 둘째, 장소.. 셋째.. 돈.
때는 이 이야기를 들은 바로 지금이어야 하구요.
장소는 같은 서울에서도 탁하지 않고 기가 맑은 곳이 있어요. 석촌호수랑 가깝거든요. 지하철 타고 가시면 되잖아요.
돈은 그냥 성의만 보이시면 되요. 그걸로 사기치려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떤 분은 돈이 이것뿐이라며 술 한 병 사서도 하세요. 정성이 중요한 거니까요.
돈을 저희한테 주셔서 저희가 장을 봐와도 되고 아니면 직접 본인이 장을 봐서 해도 되요.
나머진 저희가 다 도와드릴게요. 솔직히 큰 부담 아니잖아요...
저희가 사기칠 사람들로 보이세요?
저희는 그저 이렇게 하면 저희한테 덕이 쌓이는 거라서 하는 거예요..
그때 시간.. 밤 열 시,
그때 장소.. 석촌호수와 정반대방향, 지하철로 최소 한 시간 반 거리,
그때 지갑에 돈 한 푼도 없었고..
남들이 생각하는 류의 사기는 아니어도.. 어떤 의미에서 나는 사기당했다고 생각중이었다..
이러려고 날 만나자고 한 거였어?! ..
그리고 무엇보다.
다 좋은데.. 그런 얘기 다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바도 아니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어차피 해서 나쁠 건 없겠군.. 생각하는 정도긴 하지만..
당장, 결정해야 한다는 게 몹시 싫었다.
그리고 어느 새 등장한 또 다른 인물.
헉... 3:1?
원래는 둘이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나...
그렇게 만난 셋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배운 티가 역력하도록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했다.
옷 챙겨입고.. 목도리 두르고.. 그들이 쓰고 있던 펜 집어서 가방에 집어놓고..
저 정말 생각 없어요.
전 뭐든 할 때 굉장히 심사숙고해서 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사실 종종 충동적인 행동도 하지만.. 지나고 나서 후회없을 정도로 그 순간에 정말 미치도록 좋아서 한 일들이었으니까..
그들이 말하는 제사에는 그런 끌림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얘기도 하지 않았지.)
그런데.. 처음부터 이러려고 저한테 쪽지보내고 만나자고 하신 거예요?
저 사람한테 원래 이런 얘기 대놓고 못하는 성격인데요..
좀.. 그러네요.
죄송해요.. 저, 갈게요.
뭐 글로 쓰면 이렇지만.. 실제로는 몇 번이고 더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집어넣었던 펜도 다시 꺼내서 그들이 그림까지 그려가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11시는 넘기지 않겠다, 다짐해서 겨우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더 이상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그나마 그때까지 있었던 것.. 그들이 제대로 짚은 나의 오지랖넓은 그놈의 호기심,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 용케 잘 안 만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걸릴 줄이야.
마지막으로 나올 때까지 다음에 또 뵈요, 인사하는 그들에게 네 그래요.. 하고 나왔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 외치는 최악의 기독교인들만큼 싫은
도를 아십니까,였다.
어쨌든 배운 것 하나.
온라인에서 만나는 인연.. 참 무섭다는 것.
사람을 쉽게 믿지 않기 위해 가슴에 또 하나의 금을 그어둔다.
'건강생활 > 웃음 보따리(ㅎ)'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재미난 혈액형 (0) | 2008.01.27 |
---|---|
[스크랩] 문득 올려다본 겨울 하늘이 아름다웠어 (0) | 2008.01.27 |
[스크랩] 고요한 밤의 시간 (0) | 2008.01.27 |
[스크랩] 집에서의 하루 (0) | 2008.01.27 |
[스크랩] 다시 나를 향해 돌아앉은 세상에 고마워 (0) | 2008.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