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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과 내가 겪은 6.10민주화항쟁의 생각

공주~ 2009. 6. 5. 15:05

전국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1987년을 전후한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회상하게 됩니다. 당시는 고려대 서울대 등 교수들이 적극 참여했습니다. 당시 전국 29개 대학에서 785명의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2009년은 서울대 중앙대 등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이제 막 시작한 상황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전국 대학 교수들이 각각 시국선언에 적극 나설 예정입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를지 모르지만, 지난 1987년 보다는 올해가 훨씬 많은 교수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987년 당시 저는 대학교 2학년 시기였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거의 대다수가 직간접적으로 반독재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전국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기 전부터 전국 대학가는 민주화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함성이 높아만 갔습니다. 그 전 해인 1986년부터 이미 1년 내내 대학생들은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시위는 그 해 가을 건국대에서 전국 대학생들이 대규모 반독재 시위였습니다. 경찰들이 폭력진압으로 인해 건국대 건물 옥상까지 밀렸던 대학생들 수백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그 중 고려대 다니던 제 친구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장기 입원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묵살하고 호헌을 발표했습니다. 국민들에 의한 직접 투표가 아닌 체육관에서 간접 선거를 계속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장기독재 체제로 나가겠다는 대국민 협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전국 대학생들은 각 대학별로 대규모 투쟁이 돌입했습니다. 군사독재정부와 전면전에 나섰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4.13 호헌은 국민들의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대통령은 직접 뽑겠다는 국민들의 민주주의 요구를 무시했기 때문에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행동에 나섰던 것입니다. 전국 대학생들이 앞장 서 1987년 5.18 광주항쟁 6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대학가는 독재타도 투쟁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은 6월이 되었습니다. 6월 10일을 전후해 폭발적인 민주화 항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대학생들은 경찰들의 원천 봉쇄를 뚫고 가두 시위에 나섰습니다. 시민들은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적극 지지했습니다. 명동, 시청, 서울역, 종로, 신촌, 충무로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가두 시위가 매일 지속되었습니다.



완전무장한 전경들은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발사했습니다. 곤봉으로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시민들은 전경에 쫒긴 대학생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이 경찰에 쫒겨 민가나 건물로 도피하면 시민들은 문을 닫고 더 이상 경찰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목마르고 배고픈 학생들에게 물과 음식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전경들에 잡히면 버스 안에서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도심 빌딩의 화이트칼라 넥타이부대도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거리의 시민들도 박수를 치며 응원했고 지나가는 버스나 자동차들의 사람들도 손수건을 흔들며 지지했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전지역에서 들불처럼 시위는 연일 계속 되었습니다.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수천명이 시위에 나설 정도였습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호헌을 철폐하고 직접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는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지난 22년 전의 기억들입니다. 당시 대학생으로서 직접 목격하고 참여했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2009년 6월도 대학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계가 20여년전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