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진실(16)
최근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습니다.
- "독도는 우리 땅"일 뿐만 아니라, <대마도도 우리 땅>이다.
지금은 좀 억지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대마도 반환을 위하여 국가적으로 나선 경험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8월 18일과 9월 9일 그리고 1949년 1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은 줄기차게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합니다.
이어 1951년, 비록 나라는 전쟁 중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 작성시
미국 국무부에 보낸 문서를 통하여 대마도는 한국 땅이니 돌려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향후 대일강화회의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관철시키기로 하고
당시의 언론은 이러한 움직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 플레이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대마도를 접수할 준비까지 했던 것입니다.
사실, 대마도 영유권 문제가 나오면 일본이 유리할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일본은 몸이 달았습니다.
일본 요시다 내각은 한국 측의 이러한 움직임에 당황하여 외무성 산하에 대응 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미국 연합군 최고사령부 맥아더의 바지 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6.25 전쟁 중인데다 맥아더가 나서고 해서 유야무야 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나서서 주장할 정도로
우리의 <대마도 영유권>은 역사적으로 우리 땅임을 주장할 근거가 충분합니다.
대마도는 상당히 척박한 땅입니다.
지금도 가 보면 대마도는 돌무더기 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 이 섬의 원주민들은 신라인들이었습니다. 거기에 먹고 살기 어려운 왜인들이 하나 둘 이주해 옵니다.
지금도 인구가 몇 만 밖에 되지 않는 섬에 왜구들까지 자리를 트니 먹고 살 식량이 부족해 집니다.
농토가 없고 살기가 힘드니 자연 약탈이 만연하게 됩니다. 사람이 굶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인가에 있으면 도적이 되고 산에 있으면 산적이 될 판이니, 바다에 있는 대마도가 해적이 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해적질 말고는 생계 대책이 막연해 집니다. 대마도는 서서히 해적의 본거지로 변질됩니다.
해적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고려, 조선으로서는 당연히 대마도는 정벌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419년 세종대왕 1년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은 사실 3차 대마도 정벌이었습니다.
1418년 대마도 도주 사다시게의 사망을 전후하여, 척박한 대마도에 엄청난 식량난이 발생합니다.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은 예사였던 시절, 기근이 들면 자식을 바꾸어 잡아 먹기도 했던 대마도였습니다.
사다시게의 뒤를 이은 그 아들 사다모리는 조선과 명의 해안에서 약탈해 온 식량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황금보다도 귀한 쌀이 가마니째 실려오는 것을 본 사다모리는 묻습니다.
- 이게 어디서 난 쌀이고, 어디서 구한 보리냐.
- 조선, 명나라 해안 지방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대마도는 원래 일본과 조선, 명나라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무역으로 먹고 사는 지방이기 때문에
'가져 온다'는 말이 '사 온 것'과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 또 해적질을 했구나....
당시 대마도는 교역할 물건조차 없어 굶주리고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조달된 식량인지 뻔한 일,
이런 해적 행위가 언젠가는 조선과 명의 정벌을 부를 수도 있지만, 일단 먹고 살아야 하는 사다모리는 눈을 감습니다.
- 알았다.
대마도 도주가 이 모양이니 당연히 대마도를 근거지로 한 해적 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왜구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조선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임금은 세종으로 바뀌었지만, 군권은 당시 태종에게 있었습니다. 상왕 태종은 선전포고문을 발표합니다.
- 대마도는 본래 우리 나라 땅인데,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1350년)으로부터 변경에 뛰놀기 시작하여
마음대로 군민을 살해하고, 부형을 잡아 가고 그 집에 불을 질러서,
고아와 과부가 바다를 바라보고 우는 일이 해마다 없는 때가 없으니......
이어 태종의 주도 아래 장천군 이종무를 삼군 도체찰사로 명하고,
경상, 전라, 충청 3도에 있는 병선 227척과 병사 1만7천 명을 거느리고 음력 4월에 출병하도록 명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군단급 정벌이었습니다.
1419년 6월 19일, 조선을 출발한 정벌대는 20일에 대마도에 도착했습니다.
대마도를 살펴 본 이종무는 이게 사람이 사는 섬인지, 벌거벗은 원시인들이 사는 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 짐승들이 사는 섬이로다.
이종무는 상왕 태종의 항복 권고문을 사다모리에게 보냅니다.
-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했으니,
본디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
- 다만, 그 땅이 심히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는지라,
이러므로 왜인으로서 그 나라에서 �겨나서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다 와서, 함께 모여 살아 굴혈을 삼은 것이며,
때로는 도적질로 나서서 평민을 위협하고 노략질하여, 전곡 (錢穀)을 약탈하고,
마음대로 고아와 과부, 사람들의 처자를 학살하며, 사람이 사는 집을 불사르니, 흉악 무도함이 여러 해가 되었으니....
이종무는 사다모리가 항복할 때까지 살륙전을 펼칩니다.
왜구를 수색하여 1백여 명을 참수하고 2000여 호의 가옥을 불태웠고,
131명의 명나라 포로들을 찾아내고, 29일에는 가옥 70여 호를 태우고 명나라 사람 15명과 조선인 8명을 구출했습니다.
대마도 도주 사다모리는 애원했습니다.
- 사람의 씨를 말릴 적정이오? 살려 주시오.
이종무는 과연 이런 척박한 섬에서 살륙전을 계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생결단으로 덤벼드는 왜구 때문에 우리 측 희생자도 180명이나 나왔습니다.
- 이런 땅을 정복해 봐야 유지비가 더 들어 간다. 대마도 도주는 반드시 항복 해 올 것이다.
- 우리 측 희생자도 만만치 않다. 미개한 놈들은 득실로 달래야 한다. 철수한다.
조선군이 철수하자, 대마도 도주는 고민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통일이 되지 않았던 시절, 분명 조선은 어마어마한 대국大國이었습니다.
더구나 왜국倭國들은 조그만 나라들로 찢어져 있었습니다.
사다모리의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산과 대마도는 불과 45Km, 대마도와 일본 규슈와의 거리는 무려 132Km....
- 조선은 가깝고, 왜국倭國들은 멀다.
- 조선은 크고 힘이 세고, 왜국倭國들은 작고 약하다.
- 우리가 조선의 침공을 받았을 때, 왜국倭國들 중 하나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 우리는 신라인의 후예, 이 섬은 어차피 조선 땅이 아닌가.
대마도 도주 사다모리는 결단합니다.
- 조선에 항복하고 복속하여 조선의 한 지방이 되자. 그것이 대마도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대마도는 정식으로 조선에 항복하고, 조선에 복속하여 조선의 한 지방이 되기로 결정합니다.
이종무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 조선의 신하로 받아들여 주시오.
조선 조정은 영토에서 얻어지는 조공보다 식량 등, 유지비가 더 드는 지방을 하나 받아 들이기로 결정합니다.
- 왜구를 없애는데 드는 비용으로 생각하자. 원래 계림(신라)의 땅, 우리의 땅이고 우리 신민들 아닌가.
원래 신라의 영토였던 대마도....
이때부터 대마도는 완전하게 경상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경상도찰사의 관할 아래 놓여지게 됩니다.
조선 조정은 조선의 영토가 된 경상도 산하 대마도에 식량을 공급하기 시작하고
대마도 도주는 경상도의 한 지방으로써 매년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대마도는 그 이후로도 계속 조선의 한 지방으로 남아 있다가
임진왜란 때 일본의 편에 섰다가 다시 조선과 일본 사이를 오락가락 하다가 메이지 유신 때 일본에 강제 병합됩니다.
일본에 강제병합 되기 전까지 대마도는 분명히 법적으로 우리 땅이었습니다.
조선에서도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신라시대 때 부터 우리 땅임을 분명히 하고
그런 이유로 조선의 한 지방으로 받아 들여 관직을 수여하고 조선인이 된 그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대마도가 우리에게 영토를 가지고 복속해 온 것은 우리의 정벌로 강제 병합된 것과 다릅니다.
대마도 정벌 이후, 대마도가 스스로 영토를 가지고 복속해 온 것입니다.
오히려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 강제병합 했으니,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할 땅입니다.
대마도에는 매년 8월 아리랑 축제가 열립니다.
대마도 원주민은 우리 가야족의 아리나(허씨)족族입니다.
대마도 원주민의 DNA를 조사해 보면, 한국인과 같습니다.
대마도에서 쓰는 언어 중, 한국어에 뿌리를 둔 언어가 30% 정도나 되며 지게, 총각 등 똑 같은 언어도 많습니다.
물고기만 먹는 왜구들과 다르게 대마도에서는 제주도 흑돼지가 지방 토산 음식의 하나입니다.
자, 위의 자료들을 근거로 이제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대마도는 과연 누구의 땅입니까.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근거 있는 일이었고,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의 발언도 국제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분명히 <대마도는 우리 땅>입니다.
<대마도 지도, 우측 "경상도"라는 글 위에 누군가 노란 칠을 해 놓았군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입니다. 대마도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토였습니다.>
<장보고급 잠수함, 이종무함이 물살을 가르고 있습니다.>